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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이곳은 1867년 가을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남명희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홍봉주의 아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흥선대원군은 집권하여 쇄국정책을 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프랑스 세력과 통한다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종교박해인 병인박해를 일으켜 신도 만 여명이 처형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승지 남홍삼(요한)성인과 진사 홍봉주(토마스)를 천주교 괴수로 꼽아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밖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또한 나라 법 대로 남종삼과 홍봉주의 가족을 처벌하였는데 돈령부동지사를 지낸 남종삼의 바어지 남송교(아우구스티노)는 그해 4월17일 공주 옥에서 순교하고, 14세된 남명희(명숙)와 홍봉주의 아들을 처형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5세가 될 때까지 전주 옥에 잡혔다. 전라감사는 남명희를 살려주고자 배교하라고 타일렀으나 믿음의 근본은 오로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천주님은 천지의 대군대부이신데 어찌 배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전라감사는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나이가 차자 1867년 가을 쯤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 없어 초록바위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어 죽였다. 순교자 홍 소년은 1801년 서울에서 순교한 진사 홍낙민(루가) 전주에서 순교한 홍재영 아버지 홍봉주에 이어 4대째 순교자였고, 남명희의 가문은 3대가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