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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이완용을 위시한 친일파는 대부분은 부관참시 당했다. 이두황도 그리 될뻔했다. 1951년 빨치산 토벌대 18대대장 차일혁은 독립투사 김지강과 함께 명성황후 시해사범중의 한명인 이두황(1858~1916)의 묘를 추적해냈다. 이어 부관참시를 시도했다. 이미 서울 원남동에서 일본 고등계 형사 사이가와 미와를 처단한 전력도 있는 강골들이다. 하지만 이두황 부관참시는 불가능했다. 당대로서는 드물게 화장을 해 묻은 탓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