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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성과 동학농민운동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 - 농민들의 봉기 백산성은 한국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로 인해 1894년 1월 고부에서 동학의 고부접주인 전봉준을 선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폐정개혁을 외치며 일어나 2월 고부관아를 공격, 불법 수탈 된 수세미를 되찾아 농민에게 돌려주고 해산하였다. 이후 고부농민봉기의 주모자 및 가담자를 수색 체포하려하자, 4월 전봉준은 김기범, 손화장 등의 동학 접주들과 무장현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고 백산에 동학농민군을 집결시켜 항전의 대오를 갖추었다. 동학동님국은 부안관아 점거를 시작으로 항토현, 영광, 전주 등으로 진격하면서 외세 배격운동으로까지 전개하였으나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하고 해산하였으며 동학운동의 선두에 나셨던 동학교도들은 교수형을 받고 최후를 마쳤다. 동학농민군이 뱍산에 집결하였을 때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하여 후일 사람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러한 백산봉기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1차 봉기 후 흩어진 동학농민운동군이 재집결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전국으로 확산해 갔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