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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탐방후 몇년이 지난후에 추가하였습니다. 이 비석에 쓰여져있지 않았던 다음과 같은 최순환선생에 대한 가슴아픈 사연을 알게되었습니다. 출처 : 부안독립신문 201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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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崔基元, 1937~2009)은 부안중학교 1학년 때 겪은 일을 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이 나던 그해 7월에 논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알고 보니 경찰이 동진지서로 데려갔다 한다. 3일 후에는 경찰들이 퇴각하면서 유치장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줄포면 후촌 야산 골짜기에서 7월 19일 새벽에 사살했다.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40고라당’으로 불렀다. 40여명이 죽었다했다 해서 붙여진 슬픈 이름이다. 그 때 아버지는 한창 일할 나이인 갓 마흔이었다. 최순환의 해방 후 활동은 좌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보다는 진보적인 주변 지식인들의 권유로 소극적인 참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좌익 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해방 후에 자주적인 나라 건설의 일부를 맡는다는 책임감으로 후진 교육에 매진했을 뿐이다. 해방 후에도 야학을 열어 공부를 하고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지역교육에 헌신하고자 당오분교를 세우기 위해 당오초등학교 설립후원회장이 되었다. 4~6㎞를 걸어서 동진 초등학교에 가는 초등학생들에게 가까운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나라 위한 독립운동가는 유명을 달리한지 60년 후에야 독립유공자가 되고 2년 후에는 보훈처에서 기념비를 세우도록 지원을 했다. 필자는 그때 참석하여 최순환의 딸 최기숙이 기념비를 안고 오열하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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