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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당북 탐진최씨 호철 공 부인 마포 온양 정성녀 문래당은 청상의 업닦고 공의 동생 원철과 장신포 문화유원 사이에 낳은 맏이 상진을 호주 아들 삼아 가문세우고 가족 선산도 가꾸었습니다. 서곡 최상진과 독다리 고령 신영우는 1911년 음 9월 9일 맏아들 순환을 낳아 1912년 9월 9일생으로 호적에 올렸습니다. 산수절지 금원에게 서첩 받아 익힌 순환은 들독 들어 올리고 구실 평해 황희남과 혼인했고 서울중동학교 중퇴하고 귀향하여 매가리간 항일의 터 삼아 혹독한 옥고를 치렀습니다. 모 성재 당북간이 학교와 오거리 당북분교 후원회를 맡아 교육과 계몽의 디딤돌을 놓으시던 경산 최순환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불 밝힌 나라의 듬직한 상록수였음에도 해방의 기쁨 누릴 새 없이 항일의 옥고가 주홍글씨되어 어둠 깔린 이 초적개길을 마지막으로 밟았습니다. 1950년 7월 19일 새벽 못다 피고 진 억울한 생, 생가인 당상리 466번지와 더불어 호주상속인으로 가족선산 문래당산 산66번지를 유택으로 삼으셨습니다. 면 소재지 오가며 시대의 어둠을 곱씹던 이 초적개길이 원한한 경산의 묘도길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인 황희남 정업화는 선영과 일곱자녀 길 닦느라 법명처럼 업 쌓으며 집 나간 피붙이들 그리워 까지 울때 마중 나가곤 하던 그 까치병 앓다가 1992년 7월 15일 남편 곁으로 가셨습니다. 60년 갑주에 꽃이 핀다는 무쇠나무처럼 2010년 추서된 대한민국 건국포장 제2453호의 독립유공 경산 최순환지사의 원혼을 위해 그 다니시던 두렁길에 오늘에야 길 닦음의 비를 세우옵니다. 역사의 어둠속에서 부릅뜨신 눈 이제 편히 감으시고 길이길이 번영될 조국의 미래에 평안히 함께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