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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 8일 이용서 의병장의 휘하에서 총 15정과 도검 1자루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 기병대의 습격으로 인하여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고 피신하여 집으로 돌아와 치료하였다. 1909년 8월 8일 부상당한 상처를 치료한 후에도 계속하여 이용서 의병장의 휘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선봉장으로 임명되어 총 8정과 칼 1자루를 무장한 부하 12명을 지휘하면서 고부·태인·정읍·부안 등 각 군을 다니며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전북 김제군 홍산면 내리에서 일본 헌병에게 피체되었다. 1909년 1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