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page


146page

부안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줄포 세고(稅庫) 터 / 부안군 줄포면 줄포1길 16 [줄포리 734번지] 줄포는 서족으로 칠산바다, 동쪽으로 고부평야, 그리고 북쪽으로 변산반도를 끼고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를 갖추고 있으며, 무장과 흥덕에서 고부와 한양으로 올라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로인해 서해안 일대의 세곡(稅穀)을 보관하는 창고로 고려시대에는 안흥창(安興倉), 조선시대에는 고부군 서창(西倉) 또는 부안헌의 남창(南倉)이 있었다. 한편, 조선 시대 줄포는 제주도에서 진도.법성포.줄포로, 군산포를 거쳐 한양의 마포나루로 이어지는 서남해 연안 항로를 연결하는 경제활동의 중심 항구였다. 일본강점기에는 전북지역에서 생산한 쌀의 일본 수출 항구로 가능하며, 서해의 4대 항구(제물포.군산.줄포.목포)로 성황을 이루었다. 고부봉기 이후 지속과 확산을 모색하던 지도부는 1894년 3월 1일[양력 4. 6], 줄포 세고를 점령한 뒤 군량(軍糧)을 확보하였고, 3월 10일에는 인근의 사냥꾼에게서 총기(銃器)를 거두어 들였다. 고부를 떠나 무장으로 이동한 후 전열을 정비한 동학농민군 4천여 명이 고창과 흥덕을 거쳐 3월 23일[양력 4. 28] 줄포 사정(射亭)에 와서 머무른 후 고부 관아를 다시 점령하였다. 이때의 광경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략) 곧 포성이 울렸다.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갔다. 나도 나가서 서성거리며 바라보니, (줄포에서) 약 3㎞ 남짓 떨어진 동쪽 교외로 통하는 큰길가에서 깃발을 펄럭이고, 위세를 사방에 떨치며 들어 왔다. (중략) 척후기(斥候旗)가 있고, 청.홍.백.황색의 구별이 있었으며, 상하로 흔들고 좌우로 받치거나 급하게 또는 느리게 흔들며 부대를 지휘하였다. 그들이 지닌 무기는 죽창.활.화살.창이었고, 총은 구제(舊制)의 화승총이었다. (중략) 그들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정연하게 고부로 향해 떠났다." [전라도고부민요일기(全羅道古阜民擾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