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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부안 동학농민군 첫 집결지 - 분토동 / 전라북도 부안읍 모산리 708 (불곶이길 54-14)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 이후,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민중은 3월 20일에 무장에서 세력을 규합.확대한 후 3월 23일에 고부 관아를 다시 점령하였다. 그리고 3월 26일(양력 5월 1일)에 백산대회를 개최하여 지휘부와 혁명군을 조직하며 본격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시작하였다. 이후 부안 동학농민군이 이곳 분토동에 최초로 집결하였다. 분토동에 모인 동학농민군은 각자 죽창을 들고 있었으며,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쓴 붉을 깃발을 내걸었으며, 부안.고부.영광.무장.흥덕.고창 등 고을 이름을 쓴 작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부안 관아에 편지를 보내 시장(市場)에서 임의로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分錢收稅]하는 것을 금지할 것 등 4개 조의 고치기 힘든 폐단[弊瘼]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부안 관아를 점령하고, 전라 감영으로 보내기 위해서 부안현에서 모은 장정(壯丁)을 해산시키며 "지금 이들 장정을 모은 것은 오로지 우리를 방어하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일제히 나가서 각자 자기가 하던 일에 종사하라."라고 하였다. 일부는 부안현 서도면(西道面) 부흥역(扶興驛)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이처럼 분토동과 분포재는 부안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집결한 역사의 현장이다. 부안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집결한 이곳 분토동은 부안김씨 직장공파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며, 분포재는 조선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은 김보칠(金甫漆)의 재실이다. 편액은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썼다. "도소봉[현 승암산]에 올라 멀리 장갈리를 바라보니, 김여중(낙철)이 수백 명을 모아 분토동 김 씨 재실에 둔취(屯聚)하였다." 『홍재일기(鴻齋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