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page


59page

최제학의 국량 그리고 임병찬의 경론을 믿어기 때문이다. 임병찬이 최익현을 맞아 집지례를 올리자 스승 최익현은 임병찬에게 의군의 병권을 일임하니 병오3월초1일의 일이다. 최익현은 동지를 순방중 진안 최제학의 장수처인 삼우당에서 이호용, 정백현등과 방책을 논의하며 각처에 제휴를 청하고 종성리로 돌아와 내방의사들을 접견하다. 이때를 전후하여 창의소에 출입한 의사중 기우만, 고광순, 김상기, 이항선, 이석용, 이규홍, 양윤숙등은 이 거사후 각처에서 의진을 영도하다. 한편 임병찬은 결정된 거사일인 윤4월 13일에 김셩상, 김기술, 김식술, 유종규, 권재일등의 협조로 무성서원에 유림을 모으고 포수를 소집하다. 최익현은 4월 초2일에 창의소를 올리고 초8일에 담양 용상사에서 기우만등 유림 50여명과 회동하여 동맹록을 작성하고 격문을 각읍에 띄우다. 4월 13일 무성서원에 당도한 최익현은 먼저 봉번하고 김?에게 시도기를 적게하다. 강회를 마친다음 창의 할 뜻을 밝히니 원종자가 80여명이라. 때에 임병찬의 의병 백여명이 합세하니 각부를 정한다음 대오를 정돈하고 바로 태인읍에 들어가 읍민을 모아 창의사실을 알리고 왜적의 16 대죄 성토문을 왜공관에 발송하고 바로 연내무기를 거두다. 때에 김우섭이 수인과 함께 종군을 원하므로 잔류하여 첩보할것을 명하다. 14일 정읍에서 또 무기를 거두고 내장산에 유진중 고룡진, 김재구, 강종회가 영솔한 포군 30여명이 가세하니 의병이 300여명이라. 15일 손종궁이 이를 좌우익으로 분진 일장조련하니 군용이 숙연하다. 진군중 귀암사에 영숙하는데 채영찬이 포수 십수명을 인솔입진하다. 16일 순읍민의 출영을 받고 수성장을 불러 총포를 거두자 포수 십수명을 이끌고 황균창, 김갑술, 양윤숙등이 오니 강종회를 화포장, 김갑술을 수포수로 삼아 정군하고 바로 왜병일대를 격퇴하여다. 곡성, 순창을 순면중 의병수는 배증하고 또 김송현, 엄덕조가 포수 수십명을 이끌고와 초군수는 600이 되고 19일에는 800명에 이르다. 순창읍에서 또 왜병 수십을 격퇴하고 문서와 무기등을 ?획하다. 20일 왜적의 앞잡이 진위대가 전후로 협공해오니 최익현이 동족상잔은 불가라하여 그들에게 퇴거하라하고 의병도 해산을 명하다. 그러나 의병 백여명이 차마 떠나지 못하는데 때에 진위대가 사격을 해오니 총성이 진동하고 총탄이 비오는듯하다. 때에 정이해가 적탄에 순국하고 임병찬,고석진, 김시술, 유종슈, 최제학, 문달환, 임현주, 조우식, 조영선, 나기덕, 이용길, 유해용, 양재해등 13의사가 최후까지 맹주와 더불어 남아 곧 피체되어 형옥을 치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