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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마모토 쌀 창고 구마모토 리헤이는 생산한 쌀을 보관하고자 마을 내에 다섯 동의 쌀 창고를 지었다. 6.25전쟁 당시 4개 동은 불타 없어졌다고 전하며 현재는 화호리 용서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한 창고만이 남아있다. 구마모토 쌀 장고는 1947년 광복 후 화호중앙병원 건물로 사용되었다.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5과를 갖추었고, 입원 환자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인근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고 의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나서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화호 중앙병원은 1960년 같은 자리에 화로 여자중학교가 생기기 전까지 운영되다 폐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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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구마모토 리헤이 가옥(구. 일본인 농장가옥)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 2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전북 최대 규모의 농장을 소유했던 일본인 지주 구마모토가 사용하던 가옥이다. 일본 나가사키현 출신인 구마모토는 전북에 진출한 최초의 일본인 지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03년 전북 옥구군과 태인군(화호리) 두 지역에 농장을 개설하였고, 1937년에는 '주식회사 웅본 농장'을 창설하여 개인으로서는 전북지역 최대 지주가 되었다. 구마모토 가옥의 최초 건립시기는 192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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㉒ 화호 자혜진료소 구마모토 농작 소작인들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화호리에 진료소를 세웠다. 군산 옥구군 개정에 있던 본장(本場)에 본소를, 화호에는 지소를 두었다. 1939년에 설립되어 진료소와 농촌위생연구소 등으로 사용 되다가 현재는 마을 주민이 거주하는 주택용도로 쓰이고 있다. 사진자료에 의하면 본래 이 건물은 'ㄱ'자 형태였으나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ㅡ'자 형태로만 존재하고 있다. 이 건물은 근대농촌의 의료활동과 그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적 증거물일 뿐 아니라, 실제 광복 이후 화호중앙병원 개원의 초석을 마련해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