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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기념비 건립 취지문 사생취의는 곧 유교인의 신조요 지표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하여 정의의 기수가 되어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1919년(기미)을 당하여 국토는 이미 왜적에게 탄병되었고 치욕과 울분을 금치 못하여 날마다 죽을 땅만을 찾고 있던 한말 유교인들은 마침 그해 1월부터 5월까지 세계평화회의가 불국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개회됨을 듣고 이것은 곧 우리의 독립성을 세계만방에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며 그에 제출할 파리장서운동이 1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암동하기 시작하였다. 호영간 유림들은 과거 누적한 당파의식을 일소하고 광장의 한지리에서 전국유림대표 137인이 연명한 장서 일통을 작성하여 심산 김창숙씨로 하여금 파리에 파견키로 의결하니 곧 1919년 3월 23일이다. 심산 선생은 즉시 임무를 갖고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하였으나 의외에도 그곳 사정으로 인하여 이미 우리 대표로 파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규식씨에게 우송 제출케하고 선생은 상해에서 다시 각국어로 번역한 장서 수만 부를 본국 밑 열방에 배포하였다. 이로써 수천년 국민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나아가 한국의 독립사정과 왜적의 강도적 행위를 전세계에 폭로했던 것이다. 이때는 바로 3.1운동으로 인하여 왜적의 독아와 철제는 도처에 살상을 자행하였고 감시의 눈초리는 극도로 삼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색창연한 유교인들은 열혈과 의담으로써 적망을 뚫고 갖인 고난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형천의 불꽃이 해외만리에 연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렬무쌍한 의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기념하고 선열들의 고결한 정신을 숭모하고 선양하기 위하여 파리장서비를 제일 먼저 서울 장충단공원내(1973) 건립을 비롯하여 경남 밀양시 영남루역내(1992), 대구광역시 역시 근린공원내(1997), 경남 거창공원내(1997),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2006). 경남 합천군 일해공원내(2007)에 건립되어 있으나 호남지방에는 아직껏 건립되지 않았으니 이 지방유림들의 생각지 못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본 파리장서비건립추진위원은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읍유림의 중지를 모아 정읍시 시기동 산 9번지 초산 기슭 정읍사공원내 시립학생도서관 옆에 기념비를 건립하여 유림의 기본적 자세와 구국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애국충절의 산 교육장이 되기를 바란다. 단기 4342년 2월 일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