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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불꽃이 되어 1919년 일본경찰에 8인의사 전원이 체포 경성고법판결(동년 7월 7일) 각 유배형으로 이용규의사 경남 욕지도등 진치만의사는 평북 신미도 귀향지에서 고난과 절망감을 극복 애국혼을 지키며 토착민에게 인륜의 예절뜻을 굽히지 않는 민족의식의 교육에 전념 건강이 악화 1년후 귀향하지만 1918년 임병찬의사부터 생사를 함께한 이용규의진의 의병 돌격장이었던 곽한일등과 항일우국동지를 재규합하던중 검거되어 1개월 옥고를 치르고 1919년 3.1운동당시 정읍지역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도피 은둔생활을 히작 국내 항일세력이 3.1운동후 철저한 색출을 피해 국외로 떠나 쇠약해진 건강으로 임시정부에 합류를 못한 선생은 가족 모두가 일본경찰의 가혹한 탄압속에 홀로 외로히 망국의 한을 품은채 49세에 순국 입압산 선산으로 안장하셨다. 거룩한 정신을 흠모 의사로 칭하였고(일본)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정부는 대한민국 독립유공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국립묘지 애국지사묘 제2묘역 705호에 안장 순국선열을 추모하시니 효친충군애하고 역사의 암흑기를 강인한 용기와 자주독립 일념으로 항일구국운동에 진력(1895~1925) 30여년 헌난한 가시밭길속에서 선각자의 일생을 살다가신 유업을 영구보존하고 숭고한 겨레사랑을 후세에 전하기위하여 고향마을에 탄신 123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유적비를 건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