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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 진치만애국의사 유적비 월정 진치만(1876.7.25~1925.8.7)선생은 정읍 입만 천원 253번지에서 출생 고려 인종4년(서기 1126년) 이자겸의 난을 토벌한 대공신 진용후 신호위 상장군이 여양(홍성)군으로 봉을 받아 시조가 되신 관향 대장군 광의추밀부사대장 광현5형제 매호공파 4세조 한림학사 진화집의공계 13세조 대사헌 진우(김제 만경) 선조의 26세손으로 인품이 강직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의술이 미약한 당시 통정대부를 지내신 부 야은 진정필의 병환에 생사가 위태로우니 단지수혈로 간병 이연일년지수하였고 유년시절 학문은 천품총명하시어 조선말 청나라 사신도 찬탄한호남의 명문이신 기삼연 기우만선생으로부터 수학 19세기 조선제국이 부국강병에 실패 일본군국주의가 청일전쟁을 승리하며 조선을 강점 1895년 국모(민비)시해사건, 단발령으로 국정을 위협 민족문화유산 말살과 내정간섭에 격분한 청년 진치만은 임진왜란과 국난의 위기시 마다 구국의 중심세력이었던 선비정신의 대의를 위하여 호남 우도 의병대장 기삼연 기우만스승의 의병에 19세 나이로 참여하나 고종황제의 의병해산령으로 실패 향리에서 외세에 대항할 민족의식고취와 교육의 중요성을 느껴 제자를 양성하던중 1906년 학문교류로 뜻을 도모하여 정읍 산내면 유생 대한독립의군부 총사령 의병장 돈헌 임병찬과 함께 정읍 태인 무성서원에서 창의발군한 면암 최익현의진에 동참하나 최익현 임병찬선생이 대마도유배 순국하여 실패 1910년 한일합방후 국권회복의거에 적극가담 전북 옥구출신 전오풍 문형모와 독립의군부를 조직 전라지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편성 동지규합활동 암약타가 1913년 선생의 관향인 홍성의거에 의병대장 춘당 이용규 충남 윤병일 이만직 이내수 김태영 경성 전용규 손병일 전북 진치만등 88의사 가 유생 지도자세력으로 재집결 진충보국을 결의 일본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에게 국권반환요구 서신을 발송하고 서천 홍성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나 예산전투를 패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