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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는 1905년 최익현 의진을 결성하기 위한 모의에 참가하였으며,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작성된 독립청원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최익현이 동지 규합이 여의치 않아 실망하고 있을 때, 김양수는 고예진과 고석진, 그리고 고제만 등의 청년들과 정산에서 최익현에 호응하여 거사할 것을 함께 모의하였다. 이들은 격문을 작성하여 8도에 배포하고, 12월 충남 노성에서 각지로부터 소모된 7백여 명과 함께 거의하였다. 또한 김양수는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 작성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독립청원서는 곽종석·김창숙·이중업 등의 영남유림과 김복한·김덕진·안병찬 등의 호서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다. 이때 김양수도 유림대표 137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