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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쳤다. 그래도 왜적들은 계속 집요하게 핍박하니 선생의 이름 3자가 적혀있는 왜놈의 문서를 찢어 버렸다. 이로 인하여 왜병들은 선생의 발에 족쇄를 채워 헌병대로 강제 연행하고 온갖 만행을 다 하였다. 그래도 선생 계서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너희 주인 천황을 상대할지언정 네놈들은 상대하지 않을 터이니 물러 가라고 크게 호통을 쳤다. 이같이 강경하게 나오자 왜병들은 감옥으로 연행하였다. 만경강 사창나루를 건널 때 무이도가를 읊으시던 중 나룻배가 강 가운데에 이르자 분연히 깊은 물속에 몸을 던지니 왜놈들이 뛰어들어 선생을 끌어 배위에 올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선생은 왜병들을 크게 꾸짖으며 굴원을 만나려 가는데 어찌 하여 내 길을 막느냐며 다시 몸을 던지려 하였지만 이 또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1년 6월 5일 음력 5월 9 일 사시 감옥에서 장렬한 순절을 하시니 향년 76세요. 단식하신지 8일 만이었다. 손자 환각에게 맡겼던 의대에 남긴 절명사에는 "옛날 굴원의 정충은 멱라수에 몸을 던져 1기로 삼았는데 이제 나는 양구의 운을 당하였으니 사진으로 좇아가노라. 술 3배로 더불어 어복의 충혼을 위로하고 노중연의 도해를 따라 영원히 물가에 오르내 리고저" (신해년 5월 8일) 선생의 자는 승여요 춘우정은 호이며 본관은 도강이다. 고려 도성부원군 희조는 시조이며 충민공 회련은 조선 개국의 원종공신으로 한성좌윤이다. 춘우정은 1936년에 부 경흠과 모 나주 오 씨 장자로 태어나 익산 5현의 한 분으로 유명한 인산 소휘면의 고제 이셨다. 춘우정의 순절에 1927년에 유림들의 뜻을 기려 필양사를 건립하여 제향하고 1977년에는 각계 인사들이 선생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 하여 신창진에 춘우정 김영상 선생 투수순절추모비를 세웠다. 금년은 선생께서 순국하신지 100주년을 맞이하 여 선생의 충과 의로운 애국혼을 기려 후인들에게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11년 신묘 11월 16일 전북향토문화연구회 고문 양만정 찬 문학박사 미산 송하선 전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