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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찬선생 창의 기념표석 선생은 옥구출신으로 낙안군수를 지냈으며 1893년 이곳에 이거하여 성학과 향약으로 민풍향화에 힘쓰던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대부인의 묘소를 회문산으로 옮겨 추상거처를 네세워 거의를 획책, 의병을 훈련하던 즈음 충남 청양에서 면암 최익현선생의 거의에 동참을 요구하자 그를 스승으로 맞아 의병총수로 추대 1906년 4월 13일 무성서원에서 출병하였으나 실패한뒤 1914년 고종황제의 밀칙으로 독립의군부 육군부장 전라남북도 순무총장의 직을 받아 전국적인 거의를 도모하던 이곳은 한말의병창의의 요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