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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 백정기 의사(1896~1934) 백정기 의사는 부안(扶安)에서 태어나 12세 되던 1907년 정읍시 영원면 갈선 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있은 후 같은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인천(仁川)으로 가 일본인 시설에 대한 파괴활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탄로되어 만주 봉천(지금 심양)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음해 본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3년 여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자유노동에 종사하며 노동관계서적을 익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부득이 중국 북경으로 돌아왔다. 백정기 의사는 중국에서 중국 동지들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1928년 9월에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창립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였고, 1930년에는 북만주로 들어가 재북만무정부주의자연맹의 동지들과 함께 자유혁명자연맹(自由革命者聯盟)을 비밀리에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1932년 상해사변이 일어나자 『흑색공포단(B.T.P.)』을 조직하여 천진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고 일본군 수송선을 폭파하였다. 1933년 3월 17일 상해공동조계 무창로에 있는 일본 요정 육삼정에서 일본정객 암살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일본 장기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국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34년 6월 5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백정기 의사의 묘는 1946년 7월 6일 서울 효창공원의 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1963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