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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영은 1906년 음력 4월 최익현과 임병찬이 일으킨 병오창의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활동에 가담했다. 그는 이때 의병 모집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4월 20일에 있었던 전투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최익현이 “동족끼리 피를 볼 수 없다”며 해산명령을 내려 의병진이 무너지자, 은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