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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일찌기 을사조약으로 이 겨레가 얽매일때 의병의 함성이 뜨거웠던곳. 의군 팔백중 생사를 초월한 의사만도 열세분. 팔백의군의 함성에는 호남의 기개가 엉겼고 의사 열세분이 포박될때 오히려 우리가 이기는 정기를 뿜었다. 병오년 호남의병은 을사이후 한말 2기 의병의 주맥이니 그 대장은 면암 최익현선생으로 한결같은 성충대의 높은 봉우리였다. 음 윤4월 13일 태인 무성서원에서 꽂은 의기가 순창, 정읍, 곡성등 호남벌을 누빌때 모여든 의병은 팔백으로 불었고, 팔백의군이 드디어 토적결전에 임하였으니 그 현장이 이곳 순창땅이었다. 겨레의 의병이 분노에 떨고 온 호남벌이 대한의 충의로 숙연할때 아 이 웬일이었던가 밀어닥친 적은 왜적이 아니라 진위대였다. 간교한 왜적이 그 처럼 우리 동포를 제물로 앞세웠으니 토적 이전에 동족상잔의 피부터 흘려야 했던 숨막히는 순간 의병대장 면암 선생은 일체의 발포를 중지시킨채 동포의 애국을 눈물로 호소하셨다. 그대들도 우리와 한핏줄이니 빨리 겨눈 총뿌리를 왜적에게 돌리고 함께 싸우자. 이처럼 우리의 의병에는 의와 더불어 더큰 인이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간곡한 혈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응답은 무자비한 일제 발포였으니 일방적인 적의 포연, 탄우속에 젊은 의사 정시해는 즉석에서 순사하고, 진중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후일을 기하여 온 의병은 해산하라는 눈물 겨운 명령에도 끝내 남아 결사항거한 의사는 임병찬, 고석진, 김기술, 문달환, 임현주, 유종규,조우식, 조영선,최재학, 라기덕, 이용길, 유해용, 양재해님들 열세분이었다. 그러나 왜적의 무서운 폭력을 이기는 위대한 정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솟아올랐다. 곧 동족앞에 차마 총을 쏠수 없었던 뜨거운 사랑은 총을 쏜것이상의 애국의 발로였고, 퍼붓는 탄우속에서도 응전없이 시체를 뛰어 넘던 정기속에는 탄환보다도 더 큰 동포애의 큰 사랑이 불을 뿜었으니 병오호남의병은 오늘도 청사에 우리 한민족의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 그 승리는 드디어 저 적의 땅 대마도에서 다시 피어난다. 면암선생은 적의것은 쌀한톨, 물 한모금까지 거절하고 끝내 순국함으로써 정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눈물겹도록 위대했던 이 민족의 혼맥이니 그 혼맥은 오늘도 이곳 순창땅 창공에 푸르르고 하남의 넓은 들녘에 유구 도도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