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page


3page

이재명의사
3page

이재명 의사 동상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이재명 의사 동상(李在明義士銅像)은 의사(義士)의 숭고(崇高한 애국충정(國情)을 기리고 후세들의 애국심(心) 함양과 민족정기(民族正氣)를 바로세우고자 이재명 의사의 관향(貫鄕)인 진안이씨(安氏) 제각 영사제(思齊) 앞(진안군 진안읍 군하리 356-1번지)에 (사)이재명의사추모사업회(李在明義士追慕事業會) 주관으로 2001년 4월 30일 건립하였으며 동상의 높이는 4.5m이고 부지면적은 990㎡(300평)이다. 이재명 의사는 1886년 평남 평양에서 진안이씨 22세손으로 출생하여 1904년 미국노동이민회사의 이민모집에 응하여 하와이에서 농부로 일하다 1906년 3월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독립운동단체(韓人獨立運動團體)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07년 10월 귀국하여 같은 민족으로서 일제에게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던 매국노(賣國奴)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수호의 첩경(捷徑)이라 생각하고 을사5적의 괴수인 매국노 이완용을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재명 의사는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오는 이완용을 처단하려고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으나 분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경에게 피체(被逮)되었다. 중상을 입은 매국노 이완용은 불행하게도 잔명을 유지하여 1910년 매국조약(賣國條約)에 도장을 찍었고 이재명 의사는 서울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재명 의사는 재판정에서 매국노 이완용과 일제의 죄목을 통렬히 꾸짖으며 국권수호(國權守護)를 위하여 매국노 이완용 처단의 정당성을 역설하였고 애국적인 변호사 안병찬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1910년 5월 18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의사는 최후 진술을 통해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忠魂)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일제에게 준엄한 경고를 하고 1910년 9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殉國)하셨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建國勳章)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추서하였고 2001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로 선정하여 의사의 공적을 되새겨 보는 계기를 가졌다. 국가보훈처(國家報臨處)에서는 이재명 의사의 공적을 영구히 기리기 위해 이 시설을 2003년 5월 31일 현충시설(顯忠施設)로 지정하였으며 국권수호(國權守護)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의사의 숭고한 애국충정(愛國衷情)은 민족혼(民族魂)의 상징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시설구분 : 독립운동관련시설 / 관리번호 : 51-1-8 / 지정일 : 2003.5.31. / 관리자 : 이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