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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2009년 7월에 민족문제연구소로 귀속되었던 윤치호 불망비 2기를 진안군 부귀면에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불망비는 윤치호의 빵을 임대해 농사를 지었던 소작인들이 세운 시혜불망비 1기와 부귀초등학교 건립터를 기증한데 대한 부귀면대표(면장 백남호)가 세운 흥학불망비 1기로 윤치호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세워진 비석이다. 한때는 촉망받던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등 애국 계몽활동을 지도하고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지만 1915년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특사로 석방되면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 윤치호는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적인 약육강식의 논리에 빠져 강자의 약자 지배를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민족패배주의적 숙명론을 견지하였고, 일제의 한국침략과 식민지통치를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이며 "독립 불능론"내지 "독립무용론"을 주장하는 등 일제의 충실한 주구배로 전락해갔다. 1930년대 중반이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임전보국단 고문등을 역임하며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조선의 아들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일에 앞장서다 일제 천황의 은혜로 선량한 신민 윤치로에서 충량한 일본칙선귀족원 의원 이토 치코우가 되어 부친(윤웅렬, 일본 남작)에 이어 대를 이어 친일의 삶을 걷다 1945년 12월 민족반역의 삶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