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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복선생은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월 5일 오전 8시경, 남대문역 앞에는 학생들의 주도로 수많은 시위군중이 모였다. 주도자인 강기덕(康基德)과 김원벽(金元璧)은 인력거를 타고 ‘조선독립’이라고 크게 쓴 깃발을 휘두르며 달려와 제2회 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선포하였다. 시위군중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선두에 선 강기덕과 김원벽 등의 지휘에 따라 남대문으로 향하였는데, 적포(赤布)를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남대문에 이르렀을 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검거하자, 시위대는 일경의 제지를 피하여 1대는 남대문시장으로부터 조선은행 앞을 거쳐 보신각으로 향하고, 1대는 남대문에서 대한문 앞과 무교정을 지나 종로 보신각 앞에서 시위대와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행진을 벌였다. 당시 그는 배재고보 4학년으로서 시위대열에 참가하여 남대문역 일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1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