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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金明奎)는 경남 밀양(密陽) 사람이다. 1912년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4월 17일 동래고보 (東萊高普) 독립만세운동(獨立萬歲運動)을 주동하여 동래고보 전(全) 학생이 모여 시위행진을 하던 중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1920년 12월 28일 서울에서 동지 황상규(黃尙奎)의 밀명을 받고 길림무관학교(吉林武官學校) 설립기금의 조달을 위하여 신의주(新義州)에서 파견된 동지 김노봉(金魯鳳)과 함께 창녕(昌寧)의 부호 하경석(河慶錫)의 집에 잠입하여 군자금 3천원을 요구하여 150원을 모금한 뒤 서울의 동지 황상규에게 전달 도중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7년에는 창녕(昌寧) 유림지서(儒林支署) 갑비(甲斐) 부장 살해사건에 연루되어 10여년간 도피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