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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지(金小池) 1898.11.7.~1978.4.30. 대통령표창(1992) / 밀양시 내일동 555 김소지 선생은 내일동 555번지에서 부 김덕곤(金德坤)과 모 진련이(陳連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8년 3월 15일 밀양읍 내이동 윤희영(尹熺榮)과 김치상(金致箱)의 녀 윤치순(尹致順)과 혼인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던 선생은 1919년 3월 11일과 12일 양일간 밀양면 내일동에서 윤세주, 정동찬, 권재호, 설인길, 박만수, 이장수, 최종관, 정동준, 윤보은, 박소종 등과 13일 밀양 성내(城內)의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선생을 비롯한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12일 밤 아북산에 올라가 면사무소에서 몰래 가져온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수백 매를 등사하고 태극기도 몰래 만드는 등 거사 준비를 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3일 선생을 비롯한 윤치형, 윤세주, 정동찬, 권재호, 설인길, 박만수, 이장수, 최종관, 정동준, 박소종 등 11명의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내일동에 있는 김병환의 상점과 그 부근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과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불렀고, 특히 선생은 나팔을 불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날의 만세운동으로 선생을 포함한 20명이 일경(日警)에 체포되었고, 선생은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