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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1월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에서 김상윤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고 조선독립을 결의하였다. 이후 김상윤의 소개로 만난 대구의 김원석과 밀양경찰서를 파괴하고 경찰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의거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1920년 12월 27일을 의거날로 정하고 26일 저녁 밀양면 삼문리 장봉석 소유의 농막에서 김원석으로부터 폭탄 2개를 건네 받았다. 1920년 12월 27일 오전 9시 30분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가 경찰서원 19명을 모아 놓고 훈시를 하고 있을 때 폭탄 2개를 투척하였다. 그러나 첫번째 폭탄은 불발이 되고 두 번째 폭탄은 폭발했으나 성능이 좋지 못해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이에 자결하고자 하였으나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으나 담당검사의 공소로 4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1921년 7월 8일 오후 3시 대구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