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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한 곳이다. 공은 이와같은 충효세족과 또한 유서깊은 지령을 이어 받아 천자영명하여 소시부터 의리에 엄정하고 특히 애국사상이 투철하였다. 불우하게도 국파망으로 분연히 독립운동에 투신하니 때눈 1922년 임술 공과 뜻을 같이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신간회에 가입하여 당시 영남일대에서 민족자결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신민부중앙집행 위원장 김좌진장군으로 부터 일제의 고관과 친일분자 암살및 일제의 중요시설물 폭파를 위한 군자금 모집등의 밀령을 받고 가명 이경숙인 이병묵과 가명 신석암인 신현규 손봉현 윤창선등과 대구지방에서 활약하다가 1928년 무진5월에 일경에 체포되어 1929년 기사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경 제8호 위반 죄명으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모진고문으로 1936년 병자 음 7월 7일에 옥사순국하니 시년이 39세였다. 오호라 공의 회적이 1979년 기미 12월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독립운동사 7권 의열투쟁사 548면및 1987년 정유12월 국가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4권 706면에 상세히 기록되고 40년만에 광명한 햇빛을 보게됨에 때 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내리고 동시에 광복회의 후원과 향사람의 공의로 이 비를 세우니 산악도 빛나고 초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