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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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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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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원(申錫遠)은 1924년 음력 3월 경상남도(慶尙南道) 밀양군(密陽郡) 하남면(下南面)에서 김찬규(金燦奎)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 지원을 위한 독립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지 김찬규는 1924년 음력 3월경 임시정부 파견원이라고 하는 김보현(金普鉉)으로부터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 명의로 '군정서(軍政署) 총국장'에 임명한다는 취지의 사령서를 얻었다. 이에 신석원과 김찬규는 다수의 사령서를 만들고 배부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더불어 동지들을 규합할 것을 협의하였다. 동년 7월 하순경 신석원의 집에서 사령서 70매를 인쇄하고 신기균(申機均) 등 5명의 동지에게 나누어 주고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활동을 하다가 1925년 2월 대구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신석원은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과 1926년 5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