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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교회 3·1 만세시위는 춘화리의 김씨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여 춘화교회를 세우고 경신학교와 일신학교도 설립하였다. 때마침 경신학교 교장 김내봉은 일이 있어 평양에 갔다가 그 곳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왔다. 김응삼, 김내봉, 김성수, 김영환, 김응진등은 독립만세운동을 의논하고 김성수가 주동적인 역할을 맞았다. 이들은 부북면, 춘화면, 청운면, 덕곡리의 각 마을로 연락하여 농민 약 400~600명을 4월 6일 오후 12시 춘화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이들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각 마을을 행진하였다. 특히 이곳 농민들은 6일 밤 의거와 동시에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일인들에 대하여 퇴거를 요구하였다. 출처 :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