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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경주인으로 휘는 상윤이고 호는 초산이며 이명은 옥(玉) 또는 옥(鈺)으로 썼다. 1897년 10월 7일(음력 9월 12일) 이곳 기산리에서 광주 김공 휘 태영과 유인 밀성박씨의 5남매중 3남으로 태어나셨다. 남달리 영특하고 총명했던 선생께서는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소년임에도 종남산에 올라 대성통곡하였다 하니 이는 선생의 남다른 조국애의 발현이었으리라. 선생은 밀양의 선각자 정홍표선생이 세운 동화학교에서 김대지, 황상규선생의 지도하에 고우 약산 김원봉과 함게 민족독립사상을 연마하였다. 이어 선생께서는 서울 중앙학교를 거쳐 중국 길림성 유하현에 이회영, 이시영선생이 세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고, 이종암동지등과 함께 군사학과 폭탄제조기술등을 습득하였다. 기미년 3.1운동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비폭력운동의 한계를 젉감하고, 그 해 동짓달 초아흐렛날 신흥무관학교에서 동문수학한 김원봉, 김상윤, 이종암, 윤세주등 13인이 황상규, 김대지선생을 고문으로 모시고, 항일폭력저항단체를 결성하니, 그것이 바로 일제의 전표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조선의열단 창단이었다. 창단 이듬해인 1920년 의열단은 밀양경찰서를 첫번째 폭파대상으로 결정하고 상해로부터 무기반입을 줃고한 사건이 폭로된 6월에 다수 동지듥이 체포 투옥되었으나, 선생께서는 신출귀몰하게 삼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