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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광주김씨 22세손으로 이곳 기산리에서 1897년에 태어나신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선생의 항일 의열투쟁 기념비이다. 선생은 1919년 밀양의 선각자이신 백민 황상규, 일봉 김대지 선생의 지도아래 밀양 동화학교를 거쳐 중국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동문수학한 김원봉, 윤세주, 이성우, 한봉근, 한봉인 등 고향 친구와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을 창단한 13인 중의 한 분이시다. 최수봉동지와 함께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다나까 대장 저격사건 등 의열단의 거사활동을 총괄 지휘하는 5인 참모부의 일원으로 초기 의열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분이시다. 1924년 상해 청년동맹결성이 의열단 대표로 참여하여 188인의 발기인 중 한 분으로 독립운동단체의 연대와 단겱을 호소하고 민족주의 노선을 주장한 선도적 독립운동가이셨다. 선생은 1927년 혈기 왕성한 31세에 이역 중국땅에서 순국하시기까지 짧은 생을 불꽃같은 열정과 강철같은 의지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천하시다가 끝내 자신까지 모두 태우신 불세출의 애국자이셨다. 해방 후 번영하는 조국은 1968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