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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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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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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옥고를 같이 한 동지였으며, 특히 고인덕 의사는 출옥 후 1925년 10월 또 다시 거사를 하려다가 체포되자 옥중에서 혀를 끊어 자결하니 때에 나이 40세요. 다음 사건 주인공 최수봉 의사는 손소 만든 2개의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26세에의 젊은 나이로 대전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다시 한편 백암 윤세용 선생은 남만주로 망명하여 육군참의장으로 활약하다가 1941년에 74세로서 세상을 마치었고, 일민 손기정 선생, 김대지 선생들은 상해로 나가 한 분은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한 분은 임시정부 내무위원으로 활약하다가 다 같이 이역에서 별세했으며 단애 윤세복 선생은 남만주를 무대로 광복운동에 애쓰다가 적에게 체포되어 동지 10여 명과 밀양 출신 이원경 선생은 모두 순국하고 홀로 목단강 감옥에서 무기 복역 중 해방을 만나 고국으로 돌아와 대종교 제3세 교주로서 신도들을 지도하다가 1960년 2월에 82세로써 귀천하였으며, 그 밖에도 이 고장에는 애국지사 을강 전홍표 선생 등 많은 인물들이 계시었다. 이제 여기 이 고장의 의열사들의 사적을 대강 적었거니와 이것을 돌에 새겨 세우는 뜻은 다만 사적을 알리고자 함이 아니요. 가신 님들의 거룩한 혼을 위로하고 찬양하고 나아가 그 뜻을 길이 받들고자 함이니 이 앞을 지나는 누구나 발을 머물고 옷깃을 여미시고서 노래를 외우시라. 화악산 우러보니 푸른얼 서리었고 남강을 내다보니 붉은 뜻 뻗이었네 이 강산 이 겨레 하냥 길이 사시오리다. 서기 1965년 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