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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 출신으로 1906년 의병장 정용기(鄭鏞基)가 결성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좌익장(左翼將)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산남의진은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1906년 3월 경북 영천에서 정용기가 결성한 의병 진영이다.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鄭煥直)은 아들 용기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는데, 정용기는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가 이한구(李韓久), 손영각(孫永珏) 등을 규합하여 창의하였다. 산남의진의 진용은 대장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소모장 정순기(鄭純基), 도총장 이종곤(李鍾崑), 선봉장 홍구섭(洪龜燮), 후군장 서종락(徐鍾洛),좌영장 이경구(李景久), 우영장 김태언(金太彦), 연습장 이규필(李圭弼), 도포장 백남신(白南信) 등이 포진하였다. 정치우는 정환직의 종제로 산남의진 창의 시 좌익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산남의진 창의 초에 군수품 조달을 위해 각 초장(哨長)을 고향으로 파견하였는데, 그는 영천지역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산남의진 해산 후 정치우는 은거하다가 1941년 사망하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