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page


30page

조병화 애국지사는 1932년 4월 일본 오오사카의 계시교회에서 '삼천리 강산을 나의 무대로 삼아'라는 제목으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다 일경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대판의 한국인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1934년 10월에 '기독청년들아 분기(奮起)하라'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또한 1943년 6월 일본 야마쿠치현으로 이주하여 일제의 한국인 차별대우의 부당성을 폭로 규탄하였다. 1944년 5월에는 동포들에게 태평양전쟁의 추이와 조국독립의 멀지 않음을 역설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한글보존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1944년 8월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일로 인하여 1945년 8월 21일 산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