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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을 심혈로 실천한 애국지사가 여기에 있다. 몸을 던져 항일독립운동에 반평생을 보낸 독립투사 광복후에는 교육으로 민족역량을 키우려던 교육자로서 반평생을 바친 지사가 있으니 조용찬선생이 바로 그 분이다. 선생의 이명은 재 만충 찬 자는참헌 호는 백농이요 관은 하성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신식 학교교육을 받기전에 한학에 통달하였고 문장과 필재또한 탁월하였으며 준수하고 패기에 찬 용모에다 성품은 정의롭고 강직하여 사리사욕을 가장 경멸한 평생을 살았다. 독립운동에 투신해 구국위해 진력한 공로로 건국훈장이 서훈되었다. 선생의 가계는 신라 태사 창성부원군 휘 속용을 시조로 고려조에 팔평장육소람이 배출된 화문이며 려말 공민왕조에 배행된 좌정승 하성부우너군 배평공 휘 익청을 거친다 그 4대후 장사랑 휘 속조 임당공때 신령에 시거하였고 그 5세손인 증이조참판 휘 경온 임계공은 선생의 11대조가 된다. 6대조는 휘 용적 현조 휘 희직 고조 휘 논경 증조 휘 석규요 조고는 휘 한승 송단공이다. 송단공은 흉년에 굶주린 수백명을 몇달씩 함께 살며 구휼하고 만여평의 농지를 쾌척해 백농학원을 설립하여 신학문을 일깨웠다. 선고는 후 병국 제헌공이며 선비는 풍산유씨 휘 도진의 따님이다. 선생은 1906년 병오 10월 26일 경북 영천시 화남면 현고마을에서 백형 시환 중형 지환에 이어 삼남으로 태어났다. 초년은 백농학원및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일찍 일본실상을 파악한 부친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