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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용소리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와 귀부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 고현천변 단애에 위치했던 비석과 귀부이다. 2011년 4월 18일 ~ 2012년 10월 12일까지 (재)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2013년 이곳에 이전 복원 되었다. 비석은 모두 화강암 재질의 귀부에 비신을 올리는 형태인데 애민불망비에샤 18m 남쪽으로 떨어진 귀부가 있다. 비석 주변에는 원형 초석 4매가 배치되어 있어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대한광무황제애민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는 비석이름을 중심 좌우에 국유흥폐명유재(國有興廢天命惟在), 민안경착제력함대(民安耕鑿帝力咸載)라는 글자를 음각하였다. 글귀의 뜻은 '나라의 흥폐는 오직 하늘에 있고 백성이 밭 갈고 우물 파서 물 마시는 편안함은 황제의 힘이 두루 미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용소리 옥산전씨 기록에 의하면 전상필 선생은 고종황제 3년 상을 치른 후 애민불망비와 함께 하마비를 세웠다. 이 비석을 세운 뒤 전상필은 일제에 의해 모진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시고 비석은 1944년 강제철거되었다가 후대에 복원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애민불망미는 암반 위에 흙으로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귀부를 놓고 귀부 주변을 자갈, 마사토 순으로 채워 다지는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귀부 아래쪽 2/3 가량은 자갈과 마사토 다짐층 순으로 채워 다지는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귀부 아래쪽 2/3 가령은 자갈과 마사토 다짐층에 묻혀 보이지 않으므로 조각하지 않았다. 귀부로 부터 반경 1m 지점 4방향에 초석을 배치하였다. 초석 바깥으로는 회곽도와 돌담을 조성하였다. 돌담 파기와 회곽도 기초다지기는 동시에 이루어 졌다. 돌담 전면 남도옥 귀퉁이에는 맞배지붕을 한 일각문 형태의 출입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제 토대가 남아있다. 제작연대는 애민불망비 옆면에 '승하3년(昇遐三年)','경신5월(庚申五月)'이라는 기념명에 따라 1920년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백자, 기와, 단조 못, 자물쇠, 동전, 분청자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애민불망비와 북쪽으로 18m 가량 떠어져 마주보고 있는 귀부는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비신을 올리는 홈이 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