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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한국불교학 53집 한국에서는 부동산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고 한국적 애국심의 한 요소 이기도 합니다. 농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 같은 본능은 일본 식민정 책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경작지들이 한국인 소유였기 때문 에 일본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이들 토지수용에 대한 것이었습니 다. 이를 위해 1908년 일본정부의 지시 하에 회사가 설립되었는데(회사 의 자산은 10,000,000엔으로 그 중 60,000엔은 당시 한국정부로부터 받 아낸 채권이었고 가장 좋은 공유지였음), 일본정부는 국고에서 연간 250,000달러를 선취하여 이 동양척식회사에 지원하였습니다. 1919년 1월 26일자 「 뉴욕타임지」 기사를 보면, 이 회사의 설립 목적 은 일본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립할 수 없는 일본사람들을 한국의 식민지화에 이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한국으로의 이주비가 지급되었고 주택과 경작지, 식량, 종자 등이 제공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한국농부의 토지를 헐값에 매수하였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여기서 일본 정부가 개입을 하게 됩니다. 아시아적 방식으로 개입을 하는데, 모든 금 융조직이 정부 감시 하에 놓이는 조선은행에 집중됩니다. 영국 은행이 나 미국 재무부, 프랑스 중앙은행과 견줄만한 이 막강한 조직은 매개체 인 지점을 통하여 나라의 모든 화폐를 끌어 모으고 토지의 가격을 하락 시켰습니다. 다른 한편 한국인들은 세금을 내고 일상생활의 요구를 충 족시키기 위해 토지를 매각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가격의 하 락은 급격하게 이루어졌고, 매각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은행직원들은 실제 가격의 오분의 일 가격으로 토지를 매입하였습니다. “한국의 가장 비싼 토지의 오분의 일 이상이 일본 이민자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이들은 은행의 조작에 의해서 땅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십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35,000 일본인 가족이 한국에 자리를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