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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한국불교학 53집 립학교에는 233명의 한국인 교사가 있었던 반면에, 일본인 교사는 63명 이었습니다. 1913년에 한국인 교사는 1138명이고, 일본인 교사는 458명 이었는데, 다시 말해 5년간 한국인 교사의 증가율 대 일본인 교사의 증 가율은 44.8 * 대 7.2였습니다. 한국인 학생은 학과 과정 중 삼분의 이를 일본어를 배우는데 할애해 야 했는데 대개 일 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습득이 가능했습니다. 일본 인과 한국인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차별을 둘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요? 두 학교에서 가르치는 주제가 양과 수준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 외에도, 한국의 남학교에서는 한국 역사와 지리 교육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외국어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교과과정은 일본 역사, 지리와 문학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한일합병 이후,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로 유학 간 한국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설령 위장을 하여 떠났다 하더라도 귀국을 할 수 없 었는데 그의 이름이 ‘위험인물’ 명단에 등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들 모두는 정부 형사의 감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고위직에 진출하기 위한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몇 명의 사법 공무원이 있긴 했는데 이들은 판사라기보다는 통역관으로 일했습니다. 이들에게는 검찰관의 업무에 관여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또 한 어떠한 한국인 판사도 일본인의 소송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 검사의 봉급은 일본인 동료에 비해 약 삼분의 일에 불과했는데 같은 학 교에서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봉급 외에도 상당한 액수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들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배제되 * 4.88의 오기-역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