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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국불교학 53집 제국주의 정책 보고(RAPPORT SUR LA POLITIQUE IMPERIALISTE COLONIALE DU JAPON EN COREE) 원고를, 독일 브레멘의 한 고서점 에서 김법린 연설문이 獨譯된 서적- 에그몽 궁전의 봉화(Das Flammen- zeichen vom Palais Egmont) 원본을, 프랑스 파리 소재 국립문서보관소(Archives nationales)에서 김법린 학적부 사본을 입수하였다. 13) 암스테르담 IISG 와 파리 국립문서보관소는 한국독립운동사료가 일부 보관되어 있긴 하지 만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이번에 발굴한 자료들은 국내 학계에 보 고된 적이 없는 1차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본고의 목적은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했던 김법린의 행적을 정확히 밝혀보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와 유럽에 산재한 자료를 수 집․분석하여 기존 성과의 미비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이는 나아가 일 제강점기 불교계 민족운동의 한 궤적을 규명하는 작업에 일조될 것이 다. 김법린의 전 생애 가운데, 그의 사상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1910년부터 1927년까지를 본고의 연구 범위로 한정한다. Ⅱ. 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 1. 은해사와 양혼허 김법린은 1899년 8월 23일, 경북 영천 신녕면 치산리14)에서 팔공산 13) 프랑스 유학생 이승희 씨가 김법린의 연고지였던 소르본대학 철학과 안내와 에두아 르 리스트 병원(옛 보탱 병원) 답사(2007.9.27.), 김법린 학적부 발굴에서 원문 번역까 지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었음을 밝힌다. 14) 김법린의 2남 김인봉(1935년생)씨는 전화통화에서 선친이 태어난 곳은 치산리이고, 이사하여 자란 곳이 완전리라고 증언하였다.(2009.1.6.10:30) 김법린의 6촌 김수규(金 壽圭, 1923년생)씨는 현 ‘완전1리 763-15번지’가 김법린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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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