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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67 5월 1일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되었다. 선학원 설립을 제안했던 한용 운은 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죄목으로 3년의 옥고 끝에 출옥한 뒤 이 곳에 머물고 선학원 선우공제회 발기인 등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926 년 6월 7일 6·10만세운동 예비검속으로 또다시 체포되었다. 김법린이 밝 힌 지도교사는 한용운을 지칭한 것이 분명하며, ‘안국동 40번지’라는 기 록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2) 항일 활동 경위 1920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을 주축으로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경제적·사회적 국제 협력을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국 제연맹이 설립되었다. 그에 앞선 1919년 3월, 소련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들은 국제 노동계급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코민테른을 창립했다. 1924 년 코민테른 5차대회에서 1928년 6차대회에 이르는 때는 중국의 제1차 국공합작으로 대표되는 ‘통일전선 실천의 시기’이자, ‘레닌주의’를 국제화 하여 ‘이론의 통합’을 꾀하던 시기였다. 국제연맹과 코민테른의 대립 구도 속에서 1925년, 자본제국주의에 대 항하는 세계 통일전선 세력이 생겨났다. 독일공산당(KPD) 지도자 빌리 뮌첸베르크(Willi Münzenberg, 1889-1940)는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 에 따라, 피압박 민중과 식민지 인민을 결속하기 위한 국제반항식민지 대연맹(Liga gegen Imper ialismus und für nationale U nabhängigk eit)을 주도하였다. 국제반항식민지대연맹은 국제노동자후원회, 인권대동맹, 화 평주의단체연합회, 국제적색구제회(MOPR), 전시사망장졸가속회 등 여 러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된 것이다. 국제반항식민지대연맹은 1926년 8 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반제국주의대동맹 회의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각 민족 대표의 준비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한 채 연기되었다. 38) 같은 해 11월 22일부터 12월 16일까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확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