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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金相喆)은 1919년 4월 1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아우내장터에는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이 약 3천명의 시위군중을 모아 대대적인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독립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이때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누볐다. 시위대열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시위대열의 기세에 놀란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 합세하여 포악무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니,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였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일시 귀가한 시위군중이 이날 오후 4시경 순국자의 가족과 함께 시체를 헌병주재소에 운반해 놓고 항의하고 있을 무렵, 그는 주재소로 달려가 유치장의 벽을 걷어차며 강력히 항의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