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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진동하였다. 여세를 몰아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로 돌진하자 일본 헌병이 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도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 류관순의 아버지 류중권 어머니 이소제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조부께서는 전선으로 몸을 묶고 전신주에 올라 주재소 전화선을 절단하시다가 리본 헌병에 붙들려 현장에서 참혹하게 사지가 여섯부분으로 찢기어 순국하시었고 순국하신 시신을 뫼시는데도 일본관헌의 삼엄한 감시와 경계로 인하여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야음을 틈타 지게로 시신을 수습하여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이후 가산도 몰락하고 일본관헌의 감시로 인하여 자손들도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모진 가난과 무지로 인하여 뒤늦게 조부의 고귀한 공적을 추서받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일본경찰과 맞서 싸우신 조부의 숭고한 애국심과 공을 기리어 1977년과 1982년에 대통령 표창장,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1993년 국가유공자증을 늦게나마 후손들이 대신 받을수 있었고, 현재는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독립운동사 제1권 P.994 참조) 조부께서는 독립운동에 기여하시고 조국광복을 위해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여 31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며 조국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셨기에 이 땅에 조국광복과 민족번영이 찾아왔고 지금의 아름다운 강산이 있기까지는 당신이 뜨거운 가슴과 드높은 민족해방의 의지가 합쳐져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일신의 안위와 가족의 평안을 뒤로하고 우리 배달민족의 영원한 터전을 되찾으려 일제의 억압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치며 떠나가신 숭고한 삶을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갈 후손에게 귀감이 되고 나라사랑하신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를 비롯한 후손들이 뜻을 모아 91년이 지나서야 공덕비(추모비)라는 이름을 빌려 조부의 거룩한 마음을 받들고 싶습니다. 2010년 9월 30일 손자 이순종 관종 건종 짓고 씀 후손 일동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