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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생가 비문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라 그동안 열사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유관순 열사의 전기나 영화 등에 잘못 묘사된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이 비문은 잘못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천년에나 한번씩 크고 빛난 별이 바로 이곳에 내려와 1902년 양력 12월 16일에 유관순으로 태어났다. 유관순은 별처럼 밝고 총명하고 씩씩한 처녀로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교훈아래 어려서부터 효성과 신념이 강하였고 형제와 친구에게도 우애가 남달리 두터왔다. 관순은 서울 이화학당에서 배우는 동안에도 성실한 모법으로 이름이 높았다. 기미년 거국적인 3.1독립운동을 보고 고향에서 거사할 것을 결심하고 고향인 지령리로 돌아왔다. 20여일을 돌아다니며 교회, 학교, 유림의 대표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거사의 장소와 시일을 약속한 다음 마침내 음력 2월 그믐날 밤에 관순은 매봉에 올라 내일을 알리는 봉화를 높이 들었다. 양력 4월 1일 정오에 아우내 장터에서는 나라의 주권을 외치는 수천 명의 만세소리가 태극기의 물결과 함께 천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관순의 부모와 수십여 명의 열사들은 즉석에서 저들의 총칼아래 충혼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어 관순도 체포되어 일본헌병의 손아귀에서 갖은 악형을 당했으나 추호도 굴하지 아니하였으며 마침내 경석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받았다. 그리하여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밤낮없이 옥중 투쟁을 계속하다가 1920년 9월 28일 크고 빛난 우리의 별은 이 땅 위에서 빛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그 별은 이 하늘에 떠있어서 영원한 겨레의 별이 된것이다. 서기1977년 8월 1일 세우다. 박화성 짓고, 이철경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