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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고개 이 고개는 양성고개 또는 성은고개라 했다. 3.1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일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이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 이덕순, 이근수, 최은식, 이희룡 등의 지도 아래 돌과 몽둥이 등을 갖추고 일제 통치기관을 축출키로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 그곳 주민과 합세 2,000여 명이 일제를 몰아내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시켰다. (시위대는 이어 평택의 경부선 철도를 차단코자 했으나 일본군의 추격정보로 해산했음) 원곡,양성의 독립운동은 평북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3.1운동 3대 실력항쟁의 하나이며, 최대의 거사였다는 사실과 이 고개에서의 결의 등은 일제의 재판기록에도 명시되어있다. 이 지역의 3.1의거를 순국 24위, 피검 361명, 옥고 127명, 태형 42명, 민가 소실 9동 외에 배상, 취학 방해 등의 큰 희생을 강요당했으나, 광복 후 1993.8.15 현재 우리 정부로부터 100명이 건국훈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을 추서받았다. 그 위대한 독립정신과 이곳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3.1의거 이후 이 고개를 만세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마침내 정부고시(건설부 768호:1991.12.10.)로 확정된 것이다. 1993년 11월 30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 이택휘 고증하고 만석 최홍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