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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인필로 배 사천목씨와 경주김씨를 맞아 그 후손들이 종중을 조직운영하고 있다. 상현은 배 김해김씨와 탐진최씨를 맞아 우정을 두고 배 김해김씨와 원주원씨 사이에6녀뿐이라 종제 하영의 차남 익근을 입양했다. 익근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양부와 생부를 공평히 봉양하고 양부가 풍질로 8년간 투병할 때 줄풀(진고)을 구하려고 삼일간 하늘에 울부짖어 한 뿌리를 구해 병을 완치시켰고 돌아가시자 매일 성묘하고 귀가가 늦을 때는 호랑이가 호위했다. 마을 주민들이 이를 밝혀 관청에 효자로 추천했다. 상인은 배 진주임씨를 맞아 하영 하운 하욱 3남과 2녀를 두었다. 하영은 배 문화유씨를 맞아 태근과 익근을 두었는데 익근은 당숙 하정에게 입양되었다. 하운은 부모님 병환에 비둘기를 잡아 봉양했고 이질 치료를 위해 얼음 속 잉어를 잡아 약을 써 치료했다. 이 사실이 유생들의 보고로 읍지와 삼강록 효편에 기재되었다. 배 광산김씨를 맞아 복근과 정근을 두었다. 복근은 대를 이은 효자로 부친의 발 부스럼 치료를 위해 힘쓰나 모두 실패하고 백일 산기도를 드려 신인의 지시로 약을 얻어 치료했다. 이 사실도 삼강록 효편에 실렸다. 정근은 숙부 하욱에게 입양되었다. 후손들은 대대로 효를 실천하여 삼강록 효편에 게재된 효문이며 3.1운동에 공헌한 민족의식이 투철한 애국가문이다. 우리 고유의 장례법은 성리학적 예법에 따른 매장이 기본이다. 이는 농업 중심의 집성촌에서 선산을 마련하고 살던 사대부의 예법이다. 그러나 근래 급속한 산업화로 이농이 가속화되어 선영 관리가 곤란해졌다. 이를 걱정하는 연로족친들이 대책을 논의해 선대 묘소를 한 곳으로 이장해 모시고 후대 묘소는 납골당에 안치하여 수호하게 했다. 이를 위해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흩어져 있던 윤공 도윤공 시방공 희림공의 묘는 2007년 9월 29일에 이곳에 이장하여 모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