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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은 고려말에 경주판관과 기거사인 정언을 역임한 이인정 공에서 시작된 평리공파 28대손으로 8대조는 어모장군 식공이오. 고조는 선조조 음직 직장으로 통훈대부 사헌부집의 계공랑 종부시 주부를 증직받으신 우신공이고 증조는 통정대부 승정원승지로 경연참찬관 수찬관을 겸직하신 득서공이고 조는 승정원좌승지이신 형공이다. 고는 수질가선이신 국노공이다. 공(경자생)은 효우로 인리에 성문을 떨치셨으나 불행히도 배 초계정씨(부 사과 흥초)와의 사이에 광주인 김진장 광주인 김진복과 혼인한 2녀 뿐 후사가 없어 징공의 차남을 입양했다. 묘는 온정동에서 칠곡리 169번지 갈월동으로 이장하여 합폄했으나 이번에 이곳 칠곡리 142번지로 이장해 모셨다. 도원공(경오생)은 근검소박하며 공손해 주위에서 칭송받았다. 배 창평이씨(부 충의위 배)를 맞아 시방과 해주인 오재원 남양인 홍인집 평산인 신사덕과 결혼한 3녀를 두었다. 묘는 내가천 이곡야미에 합폄했으나 이곳 묘역으로 이장했다. 시방공(정유생)은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배 한양조씨(부 극)와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어 인필의 장남 희림을 후사로 했다. 묘는 금로 금갈동에 있었고 배의 묘는 처음 방축동에 있었으나 공의 묘와 합폄했다가 이곳으로 이장했다. 희림공(무진생)은 통훈대부 용양위부호군으로 기품이 늠름하셨다. 배 사천목씨(부 선제)와 경주김씨(부 봉인)을 맞았고 상현 상인의 후손들은 납골당을 조성했다. 묘는 노고촌이고 배 목씨의 묘는 두병동이었으나 이장해 공의 묘 옆에 쌍분을 조성했고 배 김씨의 묘는 공과 3위 합폄했다가 이곳 묘역으로 이장했다. 경주이씨는 신라초 양산촌장 표암공 알평을 시조로 하고 신라 진골 귀족 소판공 이거명 공을 중시조로 하다가 고려말에 8개파가 되어 발전한 삼한갑족이다. 이제 시대가 점차 변화하여 부득이 선대 묘소를 이장해 새로운 묘역을 마련해 모시니 무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