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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만흥 선생은, 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元谷面)·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유지인사들인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최은식(崔殷植) 등이 주도하여 추진되었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독립만세운동은 처음에는 원곡면과 양성면이 별도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염만흥은 이날 1,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 사무소에 모여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 경찰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돌아가던,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1,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합류하게 되어,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경찰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 우체국으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건조물 소훼(燒毁)·소요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취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