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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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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규는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유한제약주식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중앙대학 동창인 최승우(崔昇宇) 등에게 “임시정부에서 중견 간부로서 유식(有識) 조선 청년을 모집하고 있으니 중경으로 가자”며 중경 망명을 권유했다. 1943년 3월 이를 결행하여 중국 산해관까지 갔지만 일제 관헌의 단속으로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1944년 7월 정문규는 “조선 청년 다수가 징용당하면 조선 독립의 때에 능력있는 청년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징용을 반대하는 격문을 일본 군용열차 등에 배포하기로 계획하고, 일제 고관들을 암살하고 각종 공장을 폭파하기 위한 폭탄 제조 등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정문규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약품취급령 위반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루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