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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광복과 민족자존의 회복을 드높이 외쳤던 1926년 6.10 독립만세운동은 학생들의 구국열이 구체화 되었음에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제2의 6.10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배촌고등보통학교생 문창모, 손성엽 등은 서울시내 6개 고보생 중에 제1차 운동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 참가했어도 실제로 독립만세를 고창하지 못한 수십명의 학생동지들을 규합하여 6월 11일부터 계획을 세워 이 운동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종로구 신문로 소재 피어선기념성경학원에서 은밀히 추진계획을 세워 격문 수만매를 인쇄하여 3.1운동과 같은 거족적인 항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 운동의 계획을 주도한 학생은 피어선기념성경학원생 유재헌, 노응벽, 김동석을 비롯한 배재고등보통학교생 문창모, 오현준, 손성엽, 염필주, 차진호, 김동진, 김조영, 황규섭 그리고 협성신학교생 최영식, 손병석, 김승호 등이었다. 이 운동계획을 추진하던 중 거사일 전에 밀고로 16일에 발각되어 모두가 종로경찰서에 유치되고 송국되어 온갖 고초를 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시가로 옮겨 항쟁으로 전개하지는 못하였으나 이 운동은 처음부터 기독교계 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재거를 도모하게 되었던 것이며 신앙심을 애국정신으로 승화시킨 운동이었다. 제1,2차의 이 운동은 이후 학생독립운동의 전통을 이루어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45년 광복때까지 광범위한 항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대학교로 승격되어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 운동의 진원지었던 신문로 학원 본관을 평택대학교에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피어선기념관이라 명명하였다. 이 유서 깊은 기념관 앞에 건립한 기념비에 그 빛나는 사적의 개요를 기록하여 당시 학생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우리 민족의 귀감으로 삼으려 한다. 1999년 6월 23일 건립추진 간사 조항래 찬서, 평택대학교 총장 조기흥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