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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최익현과 임병찬이 주도한 병오창의에 참여했으나, 최익현의 해산명령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력에 의한 의병활동을 결심한다. 전주, 임실, 장수, 진안, 남원, 순창, 곡성, 거창, 함양 등지를 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했다. 정부를 비롯해 일본정부 앞으로도 규탄문을 발송하고 전국의 동포에게 민족의 주권을 되찾자는 격문, 건의문, 호소문 등을 돌렸다. 그러다 1907년 일본과 친일 대신들이 고종을 폐위하고 정미7조약을 체결, 조선정부 요직의 고문을 맡아 모든 정책결정에 관여하게 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의병거의를 서둘렀다. 마침내 1907년 9월 12일 진안 마이산 용바위 앞에서 5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