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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이선생유허비'에 대해 임실군지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수면 삼봉리 죽전마을 674번지 정재 이석용 의병장의 생가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규격은 높이 102㎝, 폭 35㎝, 두께 13㎝이며, 재질은 대리석이다. 글씨는 최성식이 썼다. 비석은 아들인 이원영을 비롯하여 뜻을 같이한 유지들이 세웠는데 비석 전면은 정재이선생유허비 (靜齋李先生遺墟碑)라고 되어있으며, 비문을 지어 1938년 11월 29일에 세웠다. 그러나 당시 세운 유허비는 일본강점기인 1941년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비석의 음기에 기록된 사람들 일부가 체포되고 일부는 수배되었는데 이에 가담한 사람들 중 아들 이원영을 비롯하여 6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분묘제사초상등 취체령 위반’으로 투옥되어, 이원영은 징역 10월, 박원충, 심한경, 이존칠, 이현승, 이맹호, 최병섭이 각각 4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잡히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도피하여 화를 면했다. 그때 세워진 유허비는 일본인들이 파손하여 없앴으나, 해방 후 찾아보니 윗부분은 없고 아래 부분만 발견되어 현재 소충사 기념관에 보관하고 역사의 증거물로 전시 중에 있다. 현재의 유허비는 해방 후 아들인 이원영이 다시 복원하여 세운 것이다